암 희망 수기
[암 희망 수기 8회] 난! 이렇게 산다.
2023-03-06 20:25
글쓴이 : 전*화
어느 날 왼쪽 가슴에 조금씩 느껴지는 통증 같은 느낌이~ 몇 년 전에도 두어 번 그랬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혹도 만져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년 전 그때 내몸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너~~이러다가 큰일 나”하고 말이다.
며칠 전에 문자로 온 건강 공단(생애전환기 검사)을 받아 보기로 했다. 다른 검사 다 받고 산부인과 검진 후 선생님께 혹이 만져진다고 하니까 초음파로 가슴과 겨드랑이 쪽을 봐주셨다. 몇 번이고 사진을 찍더니 빨리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 그분은 바로 전대병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원정 나오시는 선생님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난 후로는 통증이 더 있는 듯, 한숨도 잠을 못 자고 다음날 전대병원 내분비외과 가서 조직검사를 했다. 검사 도중에 선생님들 하시는 말씀이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학동 내분비외과에서 화순전대병원 진료 예약을 해 주셔서 며칠 후 화순으로 달려가니 수술 날짜와 치료과정을 설명 들을 수 있었다.
난 그렇게 2008년 12월 4일 14년 전에 수술대에 올랐다. 내 평생 수술이란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수술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남편에게 나 빨리 수술하고 나올게. 어디 가지 말고 있어 [죽을까 봐, 걱정은 됐었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도 철도 없었고 세상도 몰랐을까, 남편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1차 항암 할 때 너무나 힘들어서 물도 목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먹으면 토하기만 했으니까. 며칠 동안 수액+영양제로 버티고 또 버티고 있었다. 그때 너무나 힘이 들어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자살이란걸 생각했다. 일곡병원 8층 입원실.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까? 우리 집은 바로 옆 아파트다. 내가 여기서 떨어져 죽기라도 하면 우리 가족은 여기서 못 살 것이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했다.
그때가 우리 딸 고3, 아들이 중2였다. 새벽에 화장실을 갔었는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내가 아니었다. 유방암이라 머리는 다 빠져서 없고 얼굴은 시커먼 웬 낯선 여자가 나를 멍허니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어지러움에 비틀비틀… 얼른 수도꼭지를 잡고 틀어서 찬물로 얼굴을 적시니 정신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뇌리에 스치는 생각… 이 새벽에 공동화장실에 누가 많이 오지도 않을 텐데… 차디찬 바닥에 쓰러지면 얼마나 내가 있어야 하지? 그러긴 싫었다. 아픈 내몸에 너무 미안하고 후회만 가득한데… 그렇게 6번에 항암과 33회 방사선치료를 마쳤다. 시간과 세월은 그렇게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1년 8개월 후에 두 번째 진단. (목·림프절 전이) 다행히 빨리 발견해서 수술은 안하고 항암으로 우선 해보자는 교수님 말씀… 9회에 항암을 하고 체력은 바닥이 나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그냥 죽겠다고 했더니, 교수님 말씀이 그렇게 힘들면 허셉틴(표적치료)만 하자고 하셔서 수술할 때 종양(조직검사결과)이 사나운 악성인지라 그냥 두면 안 된다고 하셔서… 3년간 치료하고도 중증(산정특례) 연장해서 8년이란 세월 동안 3주에 한 번씩 한 번도 빠짐없이 허셉틴(표적치료) 하러 다녔다. 그래도 좋았다. 머리카락도 자라고 무엇보다 더 살 수 있었으니까
산정특례기간도 끝나고 해서 2년간 항암을 안하고 쉬었다. 그런데… 웬일이란 말인가. 그 아이가 3번째 또 찾아온 것이다. 2020년 7월 20일 난 지금 3번째 전이 진단을 받았다. 목림프절 전이와 수술한(왼쪽) 반대편 오른쪽 가슴에 작은 종양이 발견되었다. 참! 하늘이 야속했다. 현실은 원망만 하고 있을 수가 없어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내야만 살 수 있었다. 이번에도 수술은 않고 항암만 일단 해보자고… 그게 어딘가 수술만은 정말 싫었다.
2번째 진단 받을대 사용했던 항암제에 추가로 페제타(신약, 표적치료제) 넣어서 했지만 내몸속에 심한 거부감으로 두 번씩이나 응급실로 가야만 했었다. 심한 구토와 설사로 응급실에 가니까 수치가 바닥인지라 무균실로 바로 입원. 그렇게 5일을 지냈다. 딸과 함께…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8회까지 항암치료를 했지만 한번 사용한 항암제는 생각만큼 듣지를 않았다. 다시 다른 항암제(표적치료) 케싸일라를 써보자고 하셔서 알았다고 하면서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며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조금씩 아주 천천히 종양이 줄어들고 있었다. 고맙고 감사하게도…
이렇게 항암치료 하면서 힘들 때에는 군립요양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었다. 그때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에 정성과 보살핌을 잊을 수가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고 반찬에 몸에 좋다는 보양 음식에 [힘내서 항암치료 잘 받으라고] 가끔씩 문득문득 그대 생각이 나면 나도 모르게 혼자 조용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 딸에 가슴 아파하던 그 모습이 생각이 나서…
이제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 더 힘든 치료받는 사람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지금 이상황에 감사하라는 건지, 이만하길 다행이구나 하는 마음을 키워주려고 그러는 거 같아서…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그분들도 하루빨리 완쾌하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와 어떤 상황에도 부적을 긍정으로 바꾸려는 끊임없는 나와의 노력과 약속. 이렇게 여러 번 전이가 된 요인 중의 하나가 성격인 것도 있겠다 싶어서… 나 하나 참으면 되지하는 그런 마음도 이제 안녕하란다. 내 마음 상처받는지도 모르고 참기만 하는 그런 거 이제 안 하련다.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나를 내가 보듬어 주고 지켜주고 챙기지 않으면 누가 하랴. 훗날 내 건강을 되찾고 환하게 웃을 날만 가득하기를 굳게 믿으면서 오늘을 잘 버티면 내일도 잘 버틸 수 있다고… 그래도 너무너무 힘들게 항암 할 때를 오래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가끔씩만 소환해서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단단하고 강하게 할 정도로만
언제나 든든한 힘이 되어준 사랑하는 우리 가족
그 오랜 세월 동안 치료하느라 나만 힘들다고 달려온 시간과 세월 앞에 어느 날 남편의 주름살 가득한 너무도 나이 들어 보인 그 모습에 난 혼자 방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 사람도 참 많이도 힘들었구나. 이제는 미안한 마음에 말도 다정스럽게 따뜻하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ㅎ 이글을 써보고 또 읽어보면서 몇 번이고 눈물 콧물 찍어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도 마음은 흐뭇하고 좋다. 지금 이대로라도 좋다. 감사하다고, 아직은 3주에 한 번씩 항암 하러 가지만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힘들지 않다.
아푸다. 아푸다.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먹으면 아푸다 칭그들이 다들~ 몰려올 것 같아서… 난 아푸다는 말이나 생각들을 잘 안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선물 같은 오늘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한 번뿐인 내 인생이니까!
언제나 어렵고 힘든 상황이 생길지라도 이만하길 다행이다. 하면서 살아갈 용기를 낼 것이다. 공기처럼 늘~~ 내 삶을 채워주는 소소한 시간들을 소중하게 느낄 수 있다면 우리 자아는 충분히 건강하다고 한다. 나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 항상 배우면서 내 삶에 대해 노력하고 공부하면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어 본다.
이 글을 쓸 수 있게 기회를 열어주신 화순전남대병원 관계자분들께 깊이 감사 인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암 치료 후기 #치료 후기 #암
- 다음글
- 외손녀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