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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희망 수기

[암 희망 수기 9회] 괜찮아, 내 딸들아

2024-01-23 14:19

글쓴이 : 노*순
 나에게는 1남 2녀의 자녀가 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 새 장난감이나 좋은 음식을 사준 적도 없고, 여행도 가본 적도 없이 아이들에게 해준 것 하나 없는 엄마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바르게 컸고, 언제나 부모 먼저 생각해주는 착하고 기특한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착하고 예쁜 우리 아이들 중 딸들에게 아픔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언제나 친구 같은 나의 큰딸.
 2020년 3월 따뜻한 봄날, 핸드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계속해서 울렸다. 큰 딸이었다. 누구한테 맞은 것처럼 온몸이 너무 아프다며 3살 된 아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오겠다고 했다. 큰딸의 얼굴을 보니 하얗게 질려서 고통스러워하길래 함께 병원에 가보니 후두염인 것 같다며 수액을 맞고 약 처방을 받았지만 주사 맞은 팔에 멍이 심할 정도로 들어있었고, 해열 주사 맞은 엉덩이 쪽에도 심한 멍이 들었다. 주사를 맞고도 큰딸의 통증은 없어지지 않아 큰 병원에 가봤더니 혈액 수치가 이상하고, 백혈병이 의심된다며 구급차를 불러 화순전남대학교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3살 아들을 내 품에 남겨두고 그렇게 큰 딸은 30살에 급성 골수구성백혈병 판정을 받아 기나긴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독한 항암으로 인하여 길었던 머리카락은 없어졌고, 몸은 앙상하게 마른 모습의 딸을 보니 좋은 유전자를 주지 못한 내 탓인 것 같고, 평소 잘 챙겨주지 못한 것만 같아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항상 어린아이 같은 나의 막내딸.
2022년 4월, 큰딸의 간병을 해주던 막내딸이 대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그저 끼니를 제때 챙겨 먹지 않아 변비가 온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평소 생리통이 심해서 생리통으로 아랫배 통증이 있는 줄만 알았고, 아직 어린 나이인데 큰일은 아니겠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몇 일 후에 막내딸이 배를 움켜잡으며 걷지도 못하고 배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응급실도 가보고 산부인과에도 가봤지만, 골반염이 와서 배 통증이 심할 수 있다고만 했다. 막내딸의 통증이 줄어들 생각이 없어 큰 병원에 가봤더니 대장내시경을 급하게 해보자고 했고,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 25살의 막내딸은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복수가 갑자기 차올라 응급으로 수술이 들어갔고,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 장을 절제하면서 꽃다운 나이에 우리 막내딸은 배에 장루주머니를 차야만 했다.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큰 아픔을 겪는 모습을 보니 그저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아이들 어렸을 때 좋은 옷, 좋은 음식 마음껏 사주지 못한 죄, 좋은 유전자를 주지 못한 죄, 더 신경 쓰고 챙겨주지 못한 죄…
 아이들의 투병 생활 내내 나의 세상은 무너지는 것 같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았을 텐데, 저 아픔을 내가 가져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언제나 엄마 탓도 아니고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며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위로의 말은 내가 해줘야 하는데 아픈 아이들이 나에게 해줄 때,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씩씩하고 긍정적으로 아픔을 이겨냈다. 큰딸은 독한 항암과 조혈모세포이식까지 받고 건강해지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했고, 막내딸은 약 8개월의 시간 동안 장루주머니를 차고 다니면서 창피해하지 않고 더 당당한 모습으로 다니는 모습을 보고 그저 고맙고 기특하고 아이들이 자랑스러웠다. 항암이 끝났다고 해서 완치판정을 받은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매일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하지만 그 살얼음판 위에서 우리 모녀들은 더 단단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암세포가 다시는 우리에게 찾아오지 못하도록 매일 감사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괜찮아, 내 딸들아.
 엄마가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 언제 어디서나 너희들의 등대가 되어줄 테니, 힘들고 쉬고 싶을 때는 엄마한테 기대줬으면 좋겠어. 외모가 달라지고 모든 게 달라졌어도 엄마 눈에는 세상에서 우리 딸들이 제일 예쁘고 자랑스러우니까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어.
 엄마가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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